33. 전 날 무리한 탓에 뒤척임도 없이 잠든 학연을 내려다보며 택운은 그의 흘러내린 앞머리를 정리했다. 각인을 하지 않아도 버틸 수 있다고 믿었던 자신의 지난날을 반성하며 각인으로 연결된 충만함에 다시금 감동했다. 서로 닿아있지 않아도 어딘가 연결되어있는 느낌, 영혼의 끝자락 어딘가가 서로 묶여버린 기분에 웃음 지었다. 해가 중천에 떠올랐지만 학연은 여전...
31. 눈을 감았다 떴다. 이미 잠에서 깬지 오래였지만 어쩐지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누워있었다. 19살의 마지막 날은 뭔가 더 대단할 줄 알았다. 그러나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아침이었다. 여전히 해는 눈부셨고 공기는 차가웠고 귓가에서 속삭이는 택운의 목소리는 감미로웠다. 일어나, 네 십 대의 마지막 날이야. 택운의 말에 학연은 그저 눈을 깜빡이며 누워...
30. 단지 일 년에 끝에 가까워진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시끌벅적했다. 소파에 누워 티비를 시청하던 학연은 티비 화면을 가득 채운 택운과 홍빈의 모습을 보면서 택운이 씻어놓고 간 딸기를 집어먹었다. 딸기처럼 빨갛게 물든 손끝으로 딸기의 단내가 잔뜩 스며 들었다. 각 방송사마다 끊임없이 쏟아내는 연말 시상식에 홍빈과 택운은 빠질 수 없는 존재였다. 데뷔한지 ...
29. 불어오는 바람에 귀가 얼얼하도록 추웠지만 차에 타서 기다릴 수가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건물에서 학연이 시험을 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덩달아 떨렸다. 하나둘 건물을 빠져나오는 수험생들이 보였지만 학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먼저 시험을 끝내고 나온 사람들이 택운의 곁을 스쳐가며 흘끔거렸지만 상관없었다. 잔뜩 집중하고 학연이 들어갔던 건물 입구만...
28. 그런 날이 있다. 고작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떴을 뿐인데 웃음이 끊이지 않는 날.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두운 집안을 가로질러 택운의 침실문을 열고 들어섰다. 단지 눈을 감고 누워있는 것처럼 잠든 택운의 모습을 내려다보던 학연이 가만히 흐르는 시간을 확인하곤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아저씨, 일어나. 얼른! 들뜬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자 감은 눈을 찡긋거...
27. 핸드폰 알람 대신 누군가의 피아노 소리로 아침을 맞이하는 것은 학연에게 이제 흔한 일상 중 하나였다. 쉬이 떨어지지 않는 잠을 떨쳐내며 침실 바닥에 발을 딛자 발끝에서부터 차가운 기운이 퍼졌다. 두툼한 털로 만들어진 새하얀 털옷을 잠옷 위에 걸쳤다. 참 따듯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콜록거리며 문제를 풀 때 자신에게 덮어준 홍빈의 마음만큼이나. "...
Z.자기가 꼭 가야 하는 자리냐며 옷을 입는 내내 몇 번이나 물어오던 학연을 보면서도 택운은 그저 고개를 저었다. 걱정하지 마, 그냥 밥 먹는 자리야. 택운의 부드러운 음성에도 학연의 굳은 표정은 나아질 줄 몰랐다. 이 일의 시작은 아주 단순하고 조용하게 흘러가는 어느 날 시작됐다. 택운의 몸 상태가 나아지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갑작스럽게 걸려온 전화였다....
20." 이상 프로젝트 결과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한 달 넘게 진행된 프로젝트가 완전히 종료된 순간 팀원들의 표정에서 잊어버린 줄 알았던 미소가 떠올랐다. 임원들 앞에서 마지막 발표를 마치고 내려오는 학연의 얼굴로 팀원들의 시선이 닿았다. 침착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팀원들과 천천히 눈을 맞추며 인사하던 학연의 시선이 임원석에 앉아있던 택운에게 닿았다....
14.대부분의 팀원이 퇴근한 사무실 안에는 언제나처럼 두 사람만 남아있었다. 택운은 팀장이라는 직책으로 인해서, 학연은 업무가 익숙하지 않은 신입 직원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들보다 야근이 길어지는 원인이었다. 오전 중으로 요청받았던 보고서를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학연이 택운의 앞에 서서 서류를 내밀었다. 오늘 중으로 1차 팀장 승인이 완료되어야 하는 서...
7.[ 좋아해, 학연아. 많이 좋아하고 있어. ]이제 막 대학생이 된 우리는 각자의 감정에 솔직했다. 1학년 내내 동기와 선배들의 숱한 고백을 받았던 그녀는 학연에게 좋아한다 고백했다. 학연은 손목 밑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또 그렇게 1년을 친구처럼 지냈다. 그렇게 2학년, 3학년에도 그녀는 학연에게 고백했고 학...
1.태어나는 많은 이들의 몸 어딘가에는 희미한 흔적이 존재했다. 이 흔적은 평생 그렇게 희미하게 존재할 수도 있고 흔적 위로 누군가의 이름이 새겨질 수도 있었다. 명확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운명의 상대를 만나느냐, 그러지 않느냐였다. 운명의 상대를 만나면 흔적은 본래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한다. 느껴보지 못한 뜨거운 열기를 띄며 새겨지는 이름은 평생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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